옛 이야기

배달의 위대한 성인 제왕들

봉서방 2023. 5. 25. 22:01

배달의 위대한 성인 제왕들

백두산의 신시에서 출발한 배달국은 점차 도시국가의 틀을 벗고 동북아의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그 과정에는 특히 세 분 성황의 지대한 공덕이 있었다. 태호 복희씨, 염제 신농씨, 그리고 치우천황이다.

 

지금으로부터 5천5백 년 전, 5세 태우의환웅의 막내아들인 태호 복희씨는 하도河圖를 그려 음양오행 사상의 기틀을 마련하고, 팔괘를 지어『 주역』의 기초를 닦았다. 복희씨 덕분에 인간이 우주의 변화 법칙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또한 그는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 잡는 법을 알아내고, 결혼 제도를 만들고, 침針과 금슬琴瑟을 만들어 인간 삶의 편리를 도모하였다. 복희씨는 한마디로 동양철학의 아버지요 인류 문명의 창시자이다.

 

약 5천2백 년 전, 8세 안부련환웅 때 인물인 염제 신농씨는 농사법과 불을 쓰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배달 초기에 불을 발명한 고시씨의 후손인 신농씨는 자신이 베푼 화덕火德으로 임금에 추대되어 신농국이라는 나라까지 세웠다. 또한 수백 가지 풀을 직접 맛보아 의약을 개발하였으며, 시장을 열어 교역을 촉진시켰다. 복희씨가 기초를 마련한 문명이 신농 때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게 된 것이다.

 

 

4세 자오지천황(치우천황)은 약 4천7백 년 전 요서를 넘어 산동성과 그 주변은 물론 서쪽으로 탁록까지 진출하여 광활한 영토를 개척한 성웅聖雄이다. 치우천황의 재위 초기, 신농국이 8대 유망楡罔에 이르러 쇠퇴의 길을 걷자, 서방으로 출정하여 지금의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을 배달의 영토로 흡수하였다. 그런데 그 틈을 타 서토 지역의 일개 제후였던 헌원이 치우천황을 밀어내고 동북아의 천자가 되려고 일어났다. 이에 급히 말머리를 돌려 돌아온 치우천황은, 탁록 벌판에서 헌원의 군대와 맞서 10년 동안 73회의 접전을 치루어 마침내 헌원을 굴복시키고 제후로 삼았다. 나아가 넓어진 강역을 다스리기 위해 도읍을 백두산 신시에서 서토에 가까운 청구靑邱(현 대릉하 유역)로 옮겨 배달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법력과 위용을 떨친 치우는 배달 이후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은 물론 중국 백성들에게까지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진한 시대 중국인들은 해마다 10월이면 치우천황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그때마다‘ 붉은 기운[蚩尤旗]’이 천황의 능에서 하늘로 뻗쳤다고 한다. 이에 대한 기록은『 태백일사』,『 규원사화』 등 국내 사서만이 아니라,『 사기』「 천관서」,『사기집해』 등 중국 기록에도 나타난다.

중국 백성들만이 아니라 중국 황제들도 치우천황을 숭상하였다. 초한전으로 유명한 한 고조 유방은 치우천황 전각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싸움에 나가, 진秦의 수도 함양을 평정하였다. 4년 후 진나라 땅을 완전히 평정하였을 때, 유방은 장안長安에 치우의 사당까지 지어 치우천황을 돈독히 공경하였다『( 태백일사』).

 

요컨대 태호 복희씨, 염제 신농씨, 치우천황, 이 세 분은 동방 문명의 중심축을 세운 위대한 성인 제왕들이다. 이 세 분 제왕이 출현한 배달시대는, 삼신의 세 가지 신성 가운데 문명을 꽃피우는‘ 교화신敎化神’의 신성이 발현된 시대였다. 그리하여 역학, 천문, 의술, 농경술과 같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인간을 교화시키는 다양한 분야가 배달 시대에 크게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