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

백두산 반쪽 정말 북한이 중국에 팔아먹었을까?

봉서방 2018. 5. 6. 21:55

1712년 청나라는 서남쪽으로 정복전쟁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백두산 남쪽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다. 그런데 ‘천지에서 압록강과 토문강의 발원지를 경계로 삼는다’고 기록해 놓았다. 바로 이 ‘토문강의 발원지’가 분쟁의 씨앗이었다. 토문강은 청나라 사람들이 송화강 상류로 보는 발원지여서 두만강과 구분되었다. 토문강 발원지를 분계로 본다면 간도 일대는 조선령이 되는 것이다.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길림성 당국에서는 토문강을 도문강 곧 두만강으로 해석하는 억지를 부렸고 여러 차례 조선 관리를 불러 강변했다. 하지만 조선의 감계사인 이중하 등은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항변했다. 그러자 1908년 청은 멋대로 백두산 정계비보다 훨씬 남쪽을 국경으로 가르고는 이듬해 일본과 간도신협약을 맺었던 것이다. 그리해서 삼지연 바로 위쪽까지가 국경선이 되었다. 일제는 그 대가로 남만주철도 부설권과 무순탄광 개발권을 거머쥐면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62년 들어 북과 중은 정식으로 국경조약을 맺었다. 그 결과 국경선 1369㎞를 확정했고 강 안의 섬과 모래섬은 육지와 가까운 곳과 거주 주민의 비율에 따라 각기 자국의 영토를 결정짓기로 하고 국경의 강은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6개월 동안 실측 조사를 한 끝에 백두산 천지는 북한 영유 54.5%-중국 영유 45.5%로 갈랐고, 모두 451개의 섬은 중국 영유 187개-북한 영유 264개로 확정했는데 면적으로는 북한이 6배 정도를 확보한 셈이었다. 또 요소요소에 경계비(국계비)를 세우고 출입국 관리소는 15곳을 두게 했다.

당시 북과 중은 토문강 논쟁을 접어두고 두만강 상류로 국경을 확정했다. 압록강 발원지와 그 아래 협곡을 국경으로 결정하는 문제는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사실 이 조약은 김일성과 저우언라이가 중심이 되어 맺은 비밀조약이었으나 그 사실은 현실로 나타났기에 문화대혁명 시기 이를 주선한 연변조선족자치주 초대 주석 주덕해는 책임을 뒤집어쓰고 72년 베이징감옥에서 옥사했다. 이 조약에서 문제로 떠오른 것은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인정한 부분이었고 백두산(천지)의 반쪽을 넘겨주었다는 비난(주로 남쪽)이 퍼부어졌다

 학창시절 학교선생님들이 북한이 백두산 반쪽을 중국에 푼돈 받고 팔아치눴다 라고 말씀하곤했는데
 개소리였네요.., 선생이란 놈들이;;


요약 : 청나라에게 뺐긴걸 북한이 이득 봐서 되찾음
 협상 체결한 중국측 책임자는 감방행


출처:http://www.bobaedream.co.kr/view?code=army&No=107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