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을 권리]

봉서방 2025. 1. 7. 20:51

[사랑하지 않을 권리]
쇼펜하우어는 냉철하게 단언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증오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권리가 있을 뿐이다." 이 짧고 날 선 문장은 훈풍처럼 포장된 관계의 환상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인간은 무리 지어 살아가지만, 그 속살까지 발가벗겨 보일 필요는 없다. 마음을 주는 일이 축복일진대, 거두는 일 또한 지혜이니. 쇼펜하우어의 이 일갈은 맹목적인 호의와 관계 맺음의 강박에 짓눌린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모든 관계가 뜨거운 심장의 궤적을 따라야만 하는 것일까?
인간은 곧잘 가면을 쓴다. 속으로는 불편한 심사가 가득해도,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삐걱거리지 않기 위해 억지웃음을 짓는다. 타인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속앓이를 하는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잘 짜인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우리는 모두에게 호감과 긍정의 가면을 뒤집어쓰려 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이 불편한 진실을 꿰뚫어 본다. 억지로 빚어낸 호의는 결국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의무는 없다. 이 단호한 외침은 감정의 솔직함을 긍정하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라는 처절한 자기방어의 외침이다. 관계의 숲에서 억지 미소는 꽃이 아니라 잡초요. 때로는 칼날처럼 차가운 거절이 엉킨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더욱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의 그물망으로 우리를 옭아맨다. 손 안의 작은 창, 스마트폰은 시도 때도 없이 타인과의 연결을 강요한다. 좋아요라는 얄팍한 동의, 댓글이라는 짧은 외침, 팔로우라는 가벼운 연결은 관계의 깊이를 착각하게 만든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진정한 자기 감정을 숨긴 채 포장된 자아를 전시한다. 
쇼펜하우어의 통찰은 이러한 피상적인 관계 맺기에 날카로운 경종을 울린다. 굳이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구걸할 필요는 없다. 진정으로 마음이 동하는 관계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관계에는 무심하게 등을 돌리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삶의 방식이다. 텅 빈 껍데기뿐인 관계에 연연하며 감정을 낭비하기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진정한 교감을 나눌 상대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쇼펜하우어의 주장은 냉소적인 인간관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되묻는 철학적 성찰이다. 만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숭고하지만, 현실에서는 개인에게 과도한 감정적 부담을 지우고, 위선적인 관계를 양산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 억지로 쥐어짜낸 호의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애정만이 소중하며, 이를 위해서는 때로는 무관심이라는 냉정한 선택이 필요하다. 침묵은 때로 비겁이 되지만, 때로는 날카로운 칼날이 된다.
결국 쇼펜하우어의 메시지는 스스로 감정의 주인이 되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진정으로 소중한 관계에 집중하라는 묵직한 가르침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발버둥 치기보다, 때로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사랑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개인으로 나아가는 굳건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오늘,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이 문장을 새겨두기를 바란다. 가끔은 흐르는 강물도 잠시 멈춰 숨을 고르듯, 우리의 관계에도 무심히 흘려보낼 여백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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