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2인자를 키워라.

봉서방 2024. 10. 7. 17:42

믿음의 2인자를 키워라.

 

"유비가 신(信)을 심으니

제갈공명 충(忠)을 다했네"

"토사구팽" 한신을 버린 유방.

유방이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한나라를 세웠는데 유방의 승리뒤에는

뛰어난 장수들이 있었다.

그중 최고의 장군은 단연 한신이었다.

그러나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후 한신을 제거한다.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가 더는 필요없어 삶는다고

하더니 이제 천하를 얻었으니 나를 죽이는구나!”

죽기 전에 한신이 한 말인데 바로 이 말이

고사성어 토사구팽(兎死狗烹) 이다.

필요 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때는 버린다.

일인자가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가장

충성되고 뛰어난 사람이 2인자지만

나라를 세운 후에는

늘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혹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2인자는 늘 견제를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어지교" 생사를 함께한 유비와 제갈공명.

역사 속에 이인자의 토사구팽(兎死狗烹)만 있었을까요~?

그건 아니다. 드물긴 하지만

2인자로 최고의 삶을 산 사람도 있다.

이런 이야기가 삼국지에 나온다.

토사구팽의 반대말에 해당하는 고사성어가

수어지교(水魚之交)가 아닐까 싶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부르려고 삼고초려를 했다.

진영에 합류한 제갈공명에게 온 정성을 다하는데,

관우와 장비가 유비의 모습에 배알이 꼴렸다.

투덜대는 아우들에게 유비가 말한다.

“제갈공명과 나는 물과 고기의 관계와 같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물과 고기의 관계는 생사를 같이하는 관계다.

제갈공명은 유비의 절대적인 신임으로

"촉" 나라의 2인자가 되었다.

이릉대전에서 패한 유비가 병이 깊어졌다.

유비는 제갈공명을 불러 후일을 부탁한다.

“만일 내 자식이 황제가 될만 하면 도와주시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승상이 촉한의 황제가 되어 큰일을 이루시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유언이다.

아들을 제치고 제갈공명이 1인자가 되어도

좋다는 것인데 제갈공명은 1인자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고 충성스러운 2인자의 자리에

서서 유비의 아들에게 충성을 다했다.

황제와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라의 승상으로서 백성을 아우르며

가야 할 길을 제시했고 국민을 위한 정치,

공평무사한 정치를 하며 사리를 취하지 않고

백성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의 능력이나 수완은 유비보다 훨씬 탁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에게 죽도록 충성했다.

그뿐 아니라 그 아들 유선에게도

자신을 낮추면서 충성을 다한 것이다.

제갈공명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1인자가

될 수 있었지만 늘 그가 2인자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한 것은 유비의 신임에 대한

보답이었으며 유비는 제갈공명을 부른 후

모든 것을 항상 그와 상의했다.

"믿음의 리더십" 최고의 이인자 만들었다.

승리하는 장군들이나

성공하는 기업의 CEO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성공하는 조직을 만드는 리더는 조직의 1인자다.

그는 뛰어난 통찰력과 결단력, 품성,

네트워크 등 네 바퀴를 달고 달린다..

이때 1인자는 네 바퀴 중의 하나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바퀴 하나만 없어도

그 차는 달리지 못한다. 차의 수명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퀴는 묵묵히 달려주어야 한다.

리더들은 자기와 같이 뛸 2인자를 키워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말이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사람이 있는가~?

최고 명품의 이인자들은 누구였을까~?

조선의 태종에겐 하륜,

마오쩌둥에겐 저우언라가 있었다.

비잔틴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황제는 누구였을까?

38년간이나 통치한 유스티니아누스다.

그가 대로마제국의 재건을 실현 할 수 있었던 것은

벨리사리우스라는 이인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많은 우여곡절에도 벨리사리우스는

묵묵히 그리고 진정어린 충성을 다했다.

조선조 태종이 왕권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이인자 하륜 때문이었다.

태종이 왕위에 올라 친인척과 공신들을 대거

토사구팽 했지만 하륜만은 끝까지 중용했다.

그의 경륜과 2인자의 사심없는 충성때문이었다.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의 2인자는 저우언라이다.

그는 마오쩌둥 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지녔다고 알려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1인자의 역량은 마오쩌둥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는 41년간 보필하는 2인자로의 삶을 살았다.

그의 충성이 있었기에 마오쩌둥이

중국을 차지하고 지배를 할 수 있었다.

유비의 신임속에 1인자를 탐내지 않고

최고의 2인자로 충성을 다한 제갈공명!

태종의 하륜!

마오쪄둥의 저우언라!

로마제국의 벨리사리우스와 같은 2인자가

인물이 왜 우리나라엔 왜 없는지 안타깝다.

웃음 가득, 사랑 가득히

편안한 오늘이 되길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