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평양의 백선행 집사
봉서방
2024. 4. 11. 18:12
오래전 평양에 백과부가 살고 있었다.
이 집사님은 결혼 2년 만에 남편을 잃고 16세의 나이로 청상과부가 되었다.
삯바느질 등 온갖 일을 해서 돈 이백 냥을 모았다.
그 돈으로 일찍 죽은 남편과 시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산을 샀다.
세상물정을 잘 몰랐던 백과부는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나무 한 그루 살 수 없는 바위산을 산 것이다.
백집사는 크게 실망하였지만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다른 사람이 샀더라면 그도 망했을 텐데 나만 망했으니 감사합니다.!”
그때 일본인들은 대동강에 다리를 놓으려고 시멘트 재료가 되는 석회암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백과부의 바위산이 시멘트 재료에 딱 맞는 석회암으로 되어있었다.
일본인 오노다 사장은 백과부에게 300냥에 산을 팔라고 했지만 백과부는 거절했다.
백과부는 산 가격의 열배인 이천 냥을 주겠다는 오노다 사장의 제안도 거절했다.
속이 탄 오노다 사장은 이만 냥에 거래하려 했지만 이 또한 거절당했다.
듣자 하니 이 백과부가 목사님의 말은 잘 듣는다는 것을 알고,
그 목사님에게 백과부를 잘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목사님이 가서 말하니 백과부는 사기당해 산 땅을 어떻게 다른 사람 망하라고 다시 팔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자 목사님은 자총지종을 이야기하니 백과부는 그 자리에서 이만 냥에 산을 팔았다.
백과부는 그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작정하고
평양에 3층 규모의 공학관을 건립하고 평양 광성학교와 창덕학교의 토지 구입에도 기부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평양신학교와 숭실학교 토지 구입에도 돈을 보탰다.
그동안 백과부로 불렀던 그를 워낙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백선행집사로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했다.
1933년 5월 12일 그의 나이 86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 기독교개혁신보 2024년 3월 13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