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

천리(天理)를 헤아린 괘사(卦師)와 전봉준

봉서방 2021. 11. 26. 22:37



천리(天理)를 헤아린 괘사(卦師)와 전봉준
 
 
"엇! 이게 웬 괴변일까?"
녹두장군 전봉준이 나를 죽이려고 말을 달리고 있다니, 지금까지 이 늙은이가 
녹두장군을 위해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해왔는데, 그리하여 어려운 지경에 
놓인 전세를 승전세로 이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제 와서는
 나를 죽이려고 말을 달리다니 그것 참 괘씸한 지고!"
 
이 이야기는 약 100(1894)여 년 전에 있었던,   동학혁명 당시의 전봉준과 
유명한 대 역학가와의 사이에 있었던 비화이다.
  
일국의 임금이 되는 왕도에 있어서나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고자 하는,  
 이를테면 동학혁명과 같은 민중봉기들을 수행하는데, 표면에 드러나는 
선봉장 뒤에는 반드시 하늘의 뜻을 알고 땅의 변화무쌍함을 아는 
회천지혜인(回天知慧人)이 있기 마련이었다.
  
중국 한왕(漢王)의 군사(軍師) 장자방(張子房)이나 조선조 계유정란(癸酉靖難
) 당시 단종을 폐위하고 임금이 되었던 수양대군의 뒤에서 장자방 노릇을 
했던 한명회 등이 그런 인물들이다.
 
또한, 역발산의 역사(力士) 유비가 초라한 오막살이에서 백년서생으로 
지내고 있는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가 자신의 군사(軍師)가 돼 줄 것을
 간청하여 끝내 유비와 운명을 같이한 것이나, 문왕의 왕사 강태공,
 이태조의 왕사 무학대사, 의적으로 유명한 임꺽정의 갖바치 도사나
 서림(徐琳)등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인물들이 다 그 예이다.
  
전봉준 같은 이도 비록 사제지간이나 특별한 예의를 논한 적은 없으나
 전쟁터를 나갈 때는 귀신을 뺨친다는 어느 괘사(卦師)의 예언을 참고로
 하여 출전하고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때 괘사가 하는 예언이 잘 맞지 않아 싸움에서 크게 패한
 전봉준은 패전에 따르는 울분을 참지 못해 예언을 잘못한 괘사를 
단칼에 목을 치려고 군사들을 이끌고 밤새도록 말을 달려오는 중이었다.
  
괘사는 다른 때와 같이 아침해가 뜰 무렵 그 날의 운수를 살펴보기 위해서
 괘(卦)를 뽑아보려고 세수를 하고 마음을 정돈한 다음에 미리 준비해 논
 백지 위에 작괘(作卦)를 해놓고 팔신(八神 : 여덟 신으로 괘를 판단하는데
 기본이 됨)등을 살펴보니 해괴 망측한 변고가 그처럼 나타나는 것이었다.
  
바로 그 날. 낮에 전봉준이 자신의 목을 치러온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세상이 험악하다보니 별 희한한 일도 다 있구먼.
 전봉준이가 설령 내 목 하나 날렸다하여 감히 누가 시비를 하겠는가?
 
억울한 사람은 나말고 누가 있단 말인가! 
이럴 때면 차라리 파리가 돼 먼 곳으로 날아가고 싶지만 그렇지도 못하고
 야단났구먼, 세상 사람들은 파리목숨 파리목숨하며 하찮게 생각하나 내 목숨은
 전봉준 앞에서는 그보다도 훨씬 무력한지도 모른다." 하며 먼 산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 숨을 쉬고 있던 괘사는 손뼉을 딱 치며, "옳지 바로 그것이다. 
그걸 내가 왜 이제야 깨달았단 말인가"
  
"지금 전봉준이가 나를 죽이겠다고 말을 달려오고 있는 살기(殺氣)를 막을 수는
 없을 망정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비방(秘方)은 있다.
그것은 전봉준도 주역 괘에 능함으로 나를 찾다가 없으면 반드시 주역 괘로 
나의 행방을 정단 해 볼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이 점을 역이용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옛날 중국에서 어떤 역학사가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 복상삼척토(腹上三尺土), 즉
 자신의 배 위에 석 자 높이의 흙이 덮고 있으니, 이는 반드시 죽은 무덤으로 
상대를 오인케 하여 생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는 고사와 같이 나도 바로 그런 방법을
 써야지."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괘사(卦師)자신이, 항시 짚고 다니던 죽장(지팡이)의 중간을
 뚫기 시작했다. 그리고, 뚫린 죽장에 물을 가득 채워 집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산기슭 중에서도 옹달샘이 있어 습기가 많은 곳에 숨어 하늘을 바라보고 반듯하게 
누어 물이 가득 차 있는 죽장을 일직선으로 세웠다.
  
아침 새참 때쯤이 되자. 전봉준은 눈에 살기가 등등한 모습으로 괘사의 대문을 
발로 걷어차고서 괘사가 거쳐하는 방문을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서더니 
이내 칼을 쭉 뽑으며, 큰소리로, “이봐, 쥐 새기 같은 영감탱이!
 내가 올 줄 미리 알고 숨어 있소! 
내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큰 피해를 본 줄 아시오?”하며 갑자기 아랫목 벽에
 둘러쳐 있는 병풍을 단칼에 두 동강을 내버렸으나, 괘사는 그곳에 없고
 어디론지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온 전봉준은 부하들을 시켜 이 잡듯이 이곳저곳을 뒤져 찾아내도록
 엄명을 내렸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괘사가 집안에 없는 것이 확인되자.
괘사가 예상했던 대로 전봉준은 손수 주역 괘를 뽑아 보았다.
  
그런데 이게 또한 무슨 조화란 말인가? 괘를 뽑아본 전봉준은 지금껏 찾고 있던
 괘사가 석 자나 되는 물밑에 있으니(腹上三尺水) 이건 분명 죽은 게 아닌가. 
전봉준은 이와 같은 괘 풀이가 나오자, 부하들에게 지금껏 우리가 찾고 있던 
영감은 죽었으니 단념하라고 다시 영을 내리고는 말머리를 돌려 뒤돌아서야 했다.
 
이에 산기슭에 숨어 있던 괘사는 지금 전봉준이 어떻게 하고 있나를 알기 위해서 
다시 괘를 뽑아보았다.
  
그 결과 진위뢰(震爲雷)란 괘가 나왔는데, 그 괘가 갖고 있는 뜻을 보면 유성무형 
진경백리(有聲無形 振驚百里)라 하여 소리는 있는데, 실제 형체는 없고 놀라는 
진동소리가 백 리에 들린다하는 뜻이었다.
 
"음, 나를 찾는다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아무 성과 없이 그대로 가버렸다는 
결론이니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구먼." 하고 집으로 돌아온 괘사는 어지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평상시처럼 생활을 하게되었다.
  
그 후, 괘사가 아직 살아있다는 소문을 들은 전봉준은 괘사를 찾아와 그때. 
자신이 일시적으로 잘못했던 행동을 사죄하며, 또다시 괘사의 역할을 해달라는
 간청을 하여, 괘사 역시 전과 다름없이 전봉준을 위하여 최선의 정성을 다하여
 정단을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