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흘린 것들
모퉁이길을 돌아다니면
누가 흘리고 간 것인가
녹슨 호루라기 같은 것
길 위에 많은 것들이 떨어져 있다
모퉁이길을 돌아서면
돌맹이는 은방울같이 진동하고
비닐봉지는 아침 나비처럼
가냘픈 바람을 일으킨다
역광 속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은
아무 의미도 없이
키 작은 여자애들은 아이스크림을 흘리고 가고
비만힌 아줌마들의 개는 오줌을 흘리고 가고
지뢰밭처럼 걷는 노인들은 기침을 흘리고 가고
이국異國땅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나는 몰래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길 위에 인사말을 흘리고 간다
내일 아침 다시 이 모퉁 길을 돌아서면
어제 보던 것들은 다어디 가고
생과자를 쌌던 은박지, 생라면봉지들이
이슬에 젖어 운모처럼 빛나고 있겠지
그리고 중퐁 걸린 노인이 걷던 길에는
찰스 부론슨처럼 생긴 청바지 입은 청년이
내 소심하게 흘린 인사말 위에 답례응 하듯
불법복제한 MP3 일본말 엔가 한 곡을
흘리고 가겠지
♥ 지은이 ; 이어령